달리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시절

봄 저녁 강변 공기에는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바람은 시원했고, 해는 막 넘어가고 있었고, 산책로에는 이미 뛰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어폰 끼고 리듬 맞춰 달리는 사람도 있었고,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랑 운동화 바닥 닿는 소리가 계속 섞여 들렸는데, 그 분위기 보면서 속으로 괜히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달리기 별거 아니네.” 진짜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몸은 예전 기억만 믿고 있었습니다. 학교 운동회 때 뛰던 느낌, 군대에서 억지로 오래 뛰던 기억 같은 것만 떠올리면서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운동화 끈 묶고 집 밖으로 나가던 날 공기까지 아직 기억납니다. 괜히 시작만 하면 바로 익숙해질 줄 알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몇 분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발걸음도 꽤 가벼웠습니다. 강변 따라 불빛도 예쁘게 들어오고 있었고, 괜히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앞에서 뛰는 사람들 보면서 속도도 맞춰보고, 자세도 따라 해봤습니다. 그때는 숨도 별로 안 찼습니다.

그런데 딱 문제는 조금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갑자기 숨이 목까지 차오르더라고요.

귀에서는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괜히 괜찮은 척 계속 뛰어보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힘들다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운동장 트랙 끝 벤치에 걸터 앉아버렸습니다. 그날 따라 벤치 나무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고개 숙이고 숨만 쉬고 있었는데 땀이 생각보다 많이 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분도 천천히 자기 속도로 뛰고 있었고, 어떤 아주머니는 걷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민망했습니다. 나는 달리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시절 그대로 멈춰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 몸 속도를 알고 움직이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처음 조금 느꼈습니다. 달리기는 무조건 빨리 뛰는 사람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는 걸요.

생활이 그대로 숨소리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달리기라는 게 다리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생활이 그대로 몸에 남아 있더라고요.

늦게 자던 습관,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시간, 스트레스 쌓인 채 대충 넘기던 밥. 그런 것들이 숨소리로 바뀌어 바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피곤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뛰어보니까 몸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 바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밤늦게까지 일하고 다음 날 뛰러 나간 날은 상태가 더 심했습니다. 다리는 괜찮은데 숨이 먼저 막혔고, 어깨까지 무거웠습니다.

코로나 시절 지나고 나서는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리 분위기도 조용했고 사람들도 예전보다 덜 움직였는데, 저도 모르게 몸이 많이 둔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비 오던 날 운동장 돌다가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걸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운동화는 다 젖고, 바람은 차갑고, 입김은 계속 나오는데 숨은 또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트랙 바닥에서 물 튀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괜히 오기 부리면서 뛰다가 결국 걷고 있는데, 그 순간 이상하게 내가 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멈추는 게 창피했습니다. 달리다 걷는 사람 보면 속으로 “왜 뛰다 말지?” 생각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그렇게 되고 나니까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걷는 것도 결국 오래 가기 위한 속도였던 겁니다.

지금은 힘들면 그냥 천천히 걷습니다. 숨 좀 고르고 다시 뛰기도 하고, 그날 컨디션 안 좋으면 짧게 끝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훨씬 오래 달리게 됐습니다. 몸이 조금씩 적응하는 느낌도 들고, 예전처럼 다음 날 퍼지는 일도 줄었습니다.

신기한 건 기록 욕심 줄이고 나서부터 달리기가 덜 부담스러워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뛰는 날 자체가 긴장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바람 쐬러 나가는 느낌에 가까울 때도 있습니다.

가끔 밤 운동장 지나가다 보면 아직도 발소리가 들립니다. 규칙적으로 뛰는 사람도 있고, 걷다가 다시 뛰는 사람도 있고, 이어폰 끼고 혼자 조용히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소리 듣고 있으면 예전 숨차서 고개 숙이고 있던 제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괜히 무리했던 시절, 몸은 힘든데 마음만 앞서 있던 시절 말입니다.

오래 가는 사람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오래 달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 속도를 알고 있었고, 몸 상태를 억지로 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였습니다. 빠르게 뛰는 사람만 멋있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천천히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비 오는 날에도 나오고, 추운 날에도 조용히 뛰고, 힘들면 또 자기 속도로 걷다가 다시 뛰더라고요.

달리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시절에는 그런 걸 몰랐습니다. 그냥 체력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생활이 몸에 남고, 몸 상태가 달리기에 그대로 나오고, 그걸 인정하면서 조금씩 바뀌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괜히 오기 부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오래 가자는 생각은 조금 생겼습니다. 천천히라도 계속 움직이자는 마음 같은 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숨차서 멈춰 섰던 기억들이 이후 달리기 습관에도 꽤 많이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래 글들도 함께 보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 달리기를 하며 처음 몸이 버겁다고 느낀 순간
  • 달리기를 하며 느낀 가장 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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