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던 경험

사무실 복도에서 들려오던 발자국 소리에 괜히 고개를 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아니었는데 손님이 오셨나 싶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발소리는 늘 옆 사무실 앞에서 멈췄고,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 짧은 몇 초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던 시절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김포 신도시에서 작은 공간을 운영하던 때였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바닥을 닦았습니다. 물걸레를 밀고 나면 은은한 세제 냄새가 사무실 안에 남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놓은 뒤 예약표를 펼쳐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예약표가 빼곡해서 시간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빈칸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몸은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자에서 일어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조용해진 거리와 길어진 하루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거리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예전처럼 가게 앞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북적이던 골목도 어느새 한산해졌습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건너편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커피잔을 들고 웃는 모습도 보였고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이 마치 유리창 너머 다른 세상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예약 시간까지 한참 남은 날에는 괜히 시계를 자주 보게 됐습니다. 십 분이 지난 줄 알았는데 겨우 삼 분이 흘러 있던 적도 많았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짧다고 느꼈는데 그 시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었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저녁이 되면 이상하게 지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마디 안부가 크게 들리던 날

가끔 단골 고객이 찾아오시면 예전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서로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던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평소처럼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누군가 제 표정을 보고 먼저 마음을 알아봐 준 것 같아서였습니다.

손님이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창가에 서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횡단보도 신호음도 평소처럼 울렸습니다.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는데 제 마음만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할지가 더 큰 고민이었습니다. 계획을 세우다가도 금세 덮어두는 날이 있었고, 할 일을 적어놓고도 한참 바라만 보는 날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꾸 자신감이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천히 걷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은 사무실 문을 조금 일찍 닫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앉아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동네 공원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고 운동하러 나온 어르신들은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웃고 있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은 계속 달려야만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잠시 멈춰 있는 시간도 다시 움직이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라톤 봉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봤습니다. 힘들어하는 참가자에게 급하게 뛰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천천히 가세요.", "호흡부터 고르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이 운동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때의 하루 지금의 생각
예약표부터 확인했다. 내 마음 상태도 함께 살핀다.
빈 시간을 불안하게 보냈다. 잠시 쉬는 시간도 받아들인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숨을 고르는 날도 필요하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버티던 모습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걱정은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사무실 문을 열던 손끝의 감촉이나 조용한 복도,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순간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던 경험은 그때 처음이었습니다. 하루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천히 걷고, 잠시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조금씩 저를 바꿔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힘든 날이 찾아오면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무조건 참고 버티려고 하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조급함보다 꾸준함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조금은 믿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시기의 기억은 다른 경험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아래 이야기들도 함께 읽으면 그때의 변화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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