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처음 무릎 통증을 느낀 날
밤 열한 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습니다.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한강 둔치가 조금씩 조용해지고 있었습니다. 출발 장소만 환하게 밝았고 그 밖은 금세 어둠이 길을 덮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대회에 참가한다는 느낌보다 하루를 모두 마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길을 나서는 것 같은 분위기가 더 강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하나둘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지만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작았습니다. 낮 대회에서는 사회자의 음악과 안내 방송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면, 야간 마라톤은 모두가 조용히 자기 호흡을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운동화가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낮에는 응원 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왔는데 그날은 발소리와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강물은 까맣게 흐르고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물 위에서 길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다리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까지 더해지니 평소 자주 달리던 길도 처음 보는 장소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앞사람과 거리가 벌어져도 혼자 달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어둠 속에서 작은 헤드랜턴 불빛과 가로등 아래 움직이는 그림자만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강변 풍경을 보며 달렸는데 밤에는 자연스럽게 내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작은 자갈을 밟는 소리, 바람이 강물 위를 스치는 소리,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까지 평소보다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야간 마라톤은 몸보다 귀가 먼저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 급수대에 도착했을 때 자원봉사자 한 분이 웃으며 물을 건네주셨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평범한 말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한동안 사람 목소리보다 바람 소리만 들으며 달렸기 때문인지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하는 사람들도 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짧은 인사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라톤 봉사활동을 다니던 시절에도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낮에는 웃음이 많던 사람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큰 응원보다 작은 한마디가 더 힘이 되는 시간이라는 걸 그때 조금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야간 마라톤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빛이 없으니 체력 부담도 덜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달려보니 달랐습니다. 몸은 시원했지만 마음은 계속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앞이 어두운 구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게 됐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록을 의식하기보다 안전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데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그 모습이 예전 대치동에서 늦은 밤까지 교재를 만들던 시간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모두 퇴근한 건물에서 혼자 불을 켜 놓고 작업하던 그 시간처럼, 주변은 조용했지만 해야 할 일은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의 야간 마라톤도 그랬습니다. 누구와 경쟁하기보다 스스로와 대화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밤 한강을 지날 때면 가끔 그날이 생각납니다. 강물 위를 스치는 바람과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면 다시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하지만 밤공기 속에서 들리던 숨소리와 적막한 강변의 분위기만큼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야간 마라톤은 단순히 밤에 열린 대회가 아닙니다. 하루가 모두 끝난 시간에도 묵묵히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 긴 산책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날의 경험은 이전에 겪었던 달리기 이야기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아래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흐름이 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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