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회에 나가고 나서 달라진 생각

아직 해도 제대로 안 뜬 새벽이었는데 운동장 근처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입김이 계속 나왔고, 바닥에는 밤새 맺힌 물기 같은 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멀리서는 진행요원 마이크 소리가 웅웅 울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몸과 마음을 더 긴장을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벌써 번호표 달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뛰는 사람도 있었고, 종아리 늘리는 사람도 있었고, 괜히 계속 시계만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서서 운동화 끈만 몇 번 다시 묶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집에서는 별거 아닐 줄 알았습니다. 그냥 사람들 따라 뛰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서 서 있으니까 심장이 생각보다 빨리 뛰었습니다. 긴장인지 추워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는데 손끝도 조금 차갑더라고요. 옆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오늘 날씨 좋네” 하고 웃는데 저는 괜히 목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출발 신호 울리던 순간

출발선 근처는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신발 바닥 끌리는 소리, 물병 흔들리는 소리, 짧게 숨 들이마시는 소리들이 계속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출발 신호가 울렸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저도 같이 밀려나가듯 뛰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 밖 도로로 나가는데 발소리가 정말 크게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괜히 들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빠르게 치고 나가니까 저도 모르게 속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래 못 갔습니다. 얼마 안 가서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목 안이 뜨거워지고 어깨가 점점 굳었습니다. 다리는 괜찮은데 숨이 먼저 힘들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툭 한마디 했습니다. “처음이면 천천히 가요.” 정말 짧은 말이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날 저는 남들 속도만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괜히 뒤처지기 싫어서 무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처음인데 잘해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대회는 빨리 뛰는 사람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요.

이상하게 기억에 남던 사람들

처음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오히려 천천히 자기 속도로 가는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친구랑 짧게 웃으면서 달리고 있었고, 어떤 아저씨는 말없이 팔만 흔들면서 묵묵하게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거의 걷다시피 했는데도 포기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장면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마라톤 같은 건 체력 좋은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 관리 잘하는 사람들, 원래 건강한 사람들이 나가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전혀 달랐습니다. 다들 각자 사정 하나씩 안고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살 빼려고 시작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냥 끝까지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조용히 움직이는 장면이 그날 따라 유난히 크게 보였습니다.

중간 급수대 지나갈 때는 종이컵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봉사자들이 “천천히 가세요” 하고 외치는데 목소리가 꽤 다정했습니다.

예전에는 대회라고 하면 경쟁부터 떠올렸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분위기가 더 먼저 기억났습니다.

후반쯤 되니까 다들 말수가 줄었습니다

날씨는 꽤 따뜻한 편이었는데 후반쯤 되니까 사람들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뛰던 사람들도 점점 조용해졌습니다.

얼굴은 빨개지고 어깨는 내려가 있었고, 다들 자기 호흡 맞추느라 정신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도 그때부터는 주변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리보다 허리가 먼저 무거워졌고, 입 안은 바짝 말랐습니다. 괜히 괜찮은 척 뛰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몇 번이나 멈추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포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속도는 느려져도 다들 계속 앞으로 갔습니다. 그 모습 보는데 괜히 마음이 좀 이상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나온 자리였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으로 시작한 걸 더 오래 붙잡는다는 말이 그날 조금 이해됐습니다.

사실 기록은 잘 기억 안 납니다. 몇 분 걸렸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 끝나고 운동장 들어왔을 때 분위기는 아직도 선명합니다.

다들 숨 몰아쉬면서 물 마시고 있었는데 표정들이 묘하게 비슷했습니다. 힘든데 또 약간 멍한 얼굴. 그리고 조금은 후련해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회를 조금 다르게 봅니다

예전에는 대회를 경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오래 뛰는지, 그런 걸 보여주는 자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그냥 각자 자기 속도로 버티는 자리라는 느낌이 더 큽니다.

봄 아침 운동장 근처 지나가다 보면 가끔 그날 공기가 떠오릅니다. 멀리서 스피커 소리 들리고, 러닝복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장면 보면 아직도 괜히 긴장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리해서 뛰지는 않습니다. 숨 차면 조금 천천히 가고, 힘들면 잠깐 걷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더 오래 달리게 되더라고요.

그날 기억나는 건 기록보다 사람들 표정입니다. 끝나고 종이 메달 목에 걸고 벤치에 앉아 물 마시던 사람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누가 엄청 빠르게 뛰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그 표정들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 대회에 나갔던 날은 달리기를 배운 날보다 사람들 속도를 보게 된 날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다들 다르게 뛰는데 결국은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가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분위기가 이후 달리기 습관에도 조금씩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래 글들도 함께 보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울트라 마라톤이 일반 달리기와 다른 이유

달리면서 몸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

처음 달리기를 하며 가장 크게 실수했던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