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중반부터 표정이 달라졌던 사람들

시간이 오래 지나 정확한 지점은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 풀코스 중반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사람들의 얼굴부터 생각납니다.

출발할 때 보았던 얼굴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고, 말없이 앞만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발소리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의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쓸 틈은 없었습니다. 옆 사람을 오래 바라볼 여유도 줄어들었습니다. 다음 걸음을 계속 내딛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었습니다.

출발선에서는 사람들을 바라볼 여유가 있었습니다

풀코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주변을 꽤 많이 바라봤습니다.

사람들의 운동복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몸을 풀면서 기다리는 모습도 달랐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준비한 만큼 달릴 수 있을지 생각하며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출발 전에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바빴습니다.

잘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처음부터 너무 힘을 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첫 5km 대회에서 초반부터 너무 세게 뛰었다가 나중에 걸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자 저도 덩달아 속도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잘 달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짧은 거리에서도 제 힘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풀코스에서는 같은 식으로 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사람들이 앞으로 지나가도 되도록 따라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몸에 힘이 있을 때 속도를 줄이는 일이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지만, 긴 거리를 생각하면 마음만 앞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출발선에서 보았던 사람들도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출발을 기다리며 주변을 살펴볼 만큼은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한참 달리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제 시선은 조금씩 앞쪽 길에 오래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출발할 때처럼 주변을 두루 살피는 일이 줄었습니다. 아직 남은 길이 길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중간까지 왔다는 생각에는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이만큼을 더 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이미 몸을 움직인 시간이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주변 참가자들의 표정도 처음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없이 앞만 보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보다 자기 걸음을 이어가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얼굴을 보면서 단순히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만 가지고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말없이 달리는 사람이 아직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가는 것인지, 아니면 저처럼 힘든 것을 참고 한 걸음씩 이어가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힘들어 보였을 겁니다. 입을 벌린 채 숨을 쉬고 있었고, 얼굴 표정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풀코스 중반에는 서로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마음도 잠깐 따라갔습니다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는 속도를 조금 늦췄습니다.

제 호흡부터 살폈습니다. 너무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대로 계속 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속도를 낮추는 일이 마음까지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조금 늦추면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순간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처음 5km를 뛰었을 때는 바로 그런 마음을 따라갔습니다. 앞사람이 가면 저도 같이 갔습니다. 초반에는 그것이 잘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뒤에서 걸었습니다.

그 기억이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짧은 거리에서도 제 힘을 잘못 짚었던 사람이 긴 거리에서 마음 가는 대로 속도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앞으로 지나갈 때면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가 다시 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보다 제 호흡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제가 아주 침착하게 달렸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계속 오락가락했습니다. 조금 더 가도 될 것 같다가도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따라가고 싶다가도 제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면 다시 속도를 살폈습니다.

풀코스 중반의 기억에는 그런 작은 망설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완주 뒤에는 몇 마디로 줄여 말했지만

대회를 마치고 나면 힘들었던 긴 시간을 몇 마디로 이야기하게 됩니다.

“많이 힘들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그 정도 말로도 대충 이야기는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의 시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괜찮은 것 같다가 다시 힘들어졌고, 누군가 지나가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남은 길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웠다가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다시 발을 움직였습니다.

그런 시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누구와 함께 달렸는지는 이제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도 한 사람씩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표정의 분위기는 남아 있습니다.

출발선에서는 주변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중반으로 가면서 말이 줄고 앞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많아졌습니다. 얼굴에는 처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제 몸을 움직이느라 바쁜 참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표정들을 두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함부로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힘들었다고 해서 옆 사람도 똑같았던 것은 아닐 테니까요.

다만 한 가지 장면은 오래 남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앞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보다 앞을 보던 얼굴이 남았습니다

마라톤 현장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본 것은 참가자로 달릴 때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회 봉사를 하면서 지친 참가자들의 얼굴을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달리는 사람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풀코스를 달릴 때는 달랐습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다가도 금방 제 호흡과 다리로 생각이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한 사람의 지친 얼굴이 먼저 보였지만, 그 안에서 함께 달리니 왜 사람들이 점점 말이 없어지고 앞만 바라보게 되는지 조금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힘든 얼굴로도 계속 달렸습니다. 또 누군가는 표정만으로 상태를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날 제 얼굴을 사진처럼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면서 앞쪽 길을 바라보던 제 모습은 짐작이 갑니다.

풀코스를 다 뛰고 난 뒤에는 완주했다는 사실이 크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간에 지나쳤던 작은 장면들도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출발할 때의 얼굴보다 중반 이후의 얼굴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웃고 있느냐 힘들어 보이느냐보다, 말없이 자기 앞의 길을 바라보던 모습이었습니다.

발소리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 누가 더 여유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풀코스 중반을 떠올리면 여러 사람의 이름이나 기록보다 조용히 앞을 바라보던 얼굴들이 먼저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 사이에는 제 얼굴도 하나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와 이어지는 달리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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