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후 피로가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
운동화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발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고, 양말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새벽 공기는 제법 차가웠는데도 얼굴에서는 쉽게 열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숨을 길게 내쉬고 있으면 멀리서 달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걸음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하늘을 바라봤고, 누구는 말없이 물병을 들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 조용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편안해졌습니다.
몸은 힘들었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피로라는 게 다 같은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피곤함이나, 늦은 밤까지 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나왔을 때의 피곤함이나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만나던 시절도 그랬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학원 복도는 낮보다 더 조용해졌고, 마지막 학생이 인사를 하고 내려가면 그제야 저도 가방을 챙겼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어깨는 무겁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 불빛만 유난히 밝아 보이던 날도 많았습니다.
김포에서 관리실을 운영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몸을 관리하고 나면 손끝에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허리도 뻐근했습니다. 문을 닫고 불을 끄는 순간에는 '오늘도 끝났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고 난 뒤의 피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다리는 더 무거웠고 숨은 훨씬 가빴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속은 조용했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 남아 있다는 답답함보다 오늘 해야 할 것을 하나 끝냈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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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텍스트 없는 정사각형 사진형
- ALT: 초여름 새벽 공원 벤치에서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숨을 고르며 쉬는 모습
마라톤 현장에서 자주 보았던 표정
마라톤 행사에서 봉사를 다니던 시절에도 비슷한 장면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인데도 대회장 스피커에서는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고, 참가자들은 긴장된 얼굴로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 사람들은 각자 자기 속도로 달려 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급수대 쪽으로 오기 시작하면 얼굴은 모두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은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습니다.
"수고하세요."
신기했던 건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물 한 컵을 받아 들고는 봉사자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 점입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결승선 근처에서는 더 다양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어떤 사람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한참을 숨만 골랐습니다. 그런데 십여 분만 지나도 다시 일어나 서로 사진을 찍고 메달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여러 번 보면서 몸이 힘들다고 해서 마음까지 지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선택해서 흘린 땀은 사람 얼굴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차이
예전에는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운동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일 때문에 쌓인 피로는 내일도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남았습니다. 해야 할 일, 걱정해야 할 일,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반대로 달리고 난 뒤의 피로는 오늘 하루를 제대로 보냈다는 흔적처럼 남았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창문을 열면 새벽 공기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젖은 운동복에서는 땀 냄새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싫지 않았습니다.
다리는 묵직했지만 침대에 누우면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한결 조용했습니다. 그때는 몸이 쉬는 줄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먼저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요즘도 이른 아침 공원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예전처럼 자주 뛰지는 못하지만 운동복 차림으로 천천히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춥니다.
입김이 보이는 겨울 아침도 있었고, 여름에는 매미 소리가 크게 들리던 날도 있었습니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묘한 여유가 남아 있습니다.
예전 제 모습도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달리기 후 피로가 왜 다르게 느껴졌냐고 묻는다면 거창한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를 버티며 생긴 피곤함과, 스스로 선택해서 흘린 땀 뒤에 찾아오는 피곤함은 마음속에 남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운동화를 벗던 그 새벽의 공기와, 벤치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고르던 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기록은 잊어도 그때의 기분은 오래 남는다는 말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느꼈던 작은 변화들은 하나씩 이어져 제 생활을 조금씩 바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기억도 그 흐름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던 경험
- 달리면서 처음 무릎 통증을 느낀 날